범인은 이미 감옥에 있었다

2019년 9월 18일, 경기남부지방경찰청. 화성 연쇄살인의 유력 용의자가 특정됐다는 발표가 나왔다. 1986년부터 1991년까지 여자 열 명이 죽고, 33년 동안 한 번도 범인이 잡히지 않은 사건이었다. 특정된 남자는 도주 중이 아니었다. 이미 25년째 감옥에 있었다. 1994년 처제를 성폭행하고 살해해 무기징역을 받은 부산교도소 수감자, 이춘재였다.

발표 앞뒤로 더 이상한 대목이 드러났다. 화성의 열 건 가운데 아홉 건은 미제로 남아 있었는데, 여덟 번째 사건 하나만은 '범인이 잡힌 사건'으로 처리돼 있었다.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20년을 복역한 뒤 출소한 사람이 이미 세상에 나와 있었다. 2019년 가을, 한 사건에 '범인'이 두 명 존재했다. 한 명은 감옥 안에, 한 명은 감옥 밖에.

205만 명이 못 잡은 다섯 해

첫 사건은 1986년 9월 15일, 경기도 화성군 태안읍 일대에서 일어났다. 1991년 4월 3일 열 번째 사건까지, 다섯 해 동안 여자 열 명이 성폭행당하고 살해됐다. 경찰은 연인원 205만 명을 투입해 용의자 2만 1,280명을 조사하고 지문 4만 116건을 대조했다. 단일 사건 수사로는 지금도 깨지지 않은 기록이다. 진범은 잡히지 않았다.

1986년은 DNA 감정이라는 말조차 낯설던 시절이었다. 수사는 목격 진술과 혈액형에 기댔다. 당시 수사본부는 현장 증거를 근거로 범인의 혈액형을 B형으로 추정했고, O형이던 이춘재가 조사를 받고도 용의선상에서 벗어났다는 기록이 있다. 33년 뒤 DNA가 내놓은 답 앞에서 보면, 수사의 출발 전제부터 어긋나 있었던 셈이다.

여덟 번째 사건에만 '범인'이 생겼다

1988년 9월 16일 새벽, 여덟 번째 사건이 일어났다. 태안읍의 한 집 안방에서 자고 있던 열세 살 박 양이 성폭행당하고 살해됐다. 앞선 사건들은 전부 바깥이었다. 논둑, 들판, 야산. 집 안은 8차가 처음이었다. 경찰은 수법이 다르다는 이유로 8차를 연쇄살인에서 떼어내 모방범죄로 분류했다.

열 달 뒤인 1989년 7월 25일, 경찰이 스물두 살 농기구 수리공 윤성여를 연행했다. 어릴 때 앓은 소아마비로 한쪽 다리가 불편한 사람이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가 사건 현장의 체모와 윤성여의 체모가 일치한다는 방사성동위원소 감정 결과를 내놨고, 잠을 재우지 않는 사흘의 조사 끝에 윤성여는 범행을 시인했다. 법정에서 윤성여는 시인을 거둬들였다. 자백은 경찰서에서 만들어졌다고, 불편한 다리로 쪼그려뛰기를 시켰고 못 하면 때렸다고 말했다.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1990년 대법원에서 무기징역이 확정됐다.

복역 내내 윤성여는 무죄를 주장했다. 감옥 안에서 윤성여가 정한 것은 하나였다. 하지 않은 일을 했다고 말하지 않는 것. 2000년 광복절 특별사면으로 무기징역이 20년형으로 줄었고, 2009년 8월 윤성여는 가석방으로 청주교도소를 나왔다. 스무 해 만의 바깥이었지만, 서류 위에서 윤성여는 여전히 8차 사건의 살인범이었다. 진범이 밝혀질 길도 닫혀 있었다. 화성 연쇄살인의 공소시효는 2006년에 전부 끝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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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창고의 증거물이 다시 읽혔다

2019년 7월, 경기남부지방경찰청 미제사건수사팀이 보관돼 있던 화성 사건 증거물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다시 보냈다. 1980년대의 기술로는 읽을 수 없던 것을 2019년의 기술은 읽을 수 있었다. 한 달이 채 되지 않아 회신이 왔다. 증거물에서 나온 DNA는 부산교도소 무기수 이춘재를 가리켰다.

이춘재는 조사에서 줄곧 부인하다가, 9월 24일 네 번째 접견에서 입을 열었다. 경찰이 10월 2일 발표한 자백의 규모는 살인 14건, 성폭행과 강간미수 30여 건. 자백에는 화성의 열 건이 전부 들어 있었다. 경찰이 30년 전 모방범죄로 분리했던 8차 사건까지.

공소시효가 끝난 이춘재는 화성 사건으로는 재판정에 서지 않는다. 자백은 처벌로 이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8차 사건만은 얘기가 달랐다. 감옥 밖에 판결문을 지고 사는 사람이 있었다. 윤성여가 재심을 청구했고, 수원지방검찰청이 30년 전 수사 기록을 다시 파냈다.

오류가 아니라 조작이었다

기록에서 나온 것은 부실이 아니라 조작이었다. 윤성여를 지목했던 결정적 증거,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방사성동위원소 체모 감정서는 조작된 것으로 확인됐다. 감정 결과는 한 달 사이 두 번 바뀌어 있었고, 분석 대상에 이춘재의 체모는 아예 없었다. 국과수 쪽은 의도적 조작이 아니라 분석 오류였다고 맞서 검찰과 공방이 붙기도 했다. 어느 쪽이든 결론은 같은 자리로 온다. 8차 사건의 '잡힌 범인'은 처음부터 만들어진 범인이었다.

2020년 12월 17일, 수원지방법원. 재심 재판부는 가혹행위로 받아낸 자백은 증거가 될 수 없다며 윤성여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장 박정제 부장판사는 선고 끝에, 잘못된 수사와 판결로 오랜 고통을 겪은 윤성여에게 법원의 이름으로 사과했다. 1989년 여름에 붙잡혀 간 스물두 살 수리공은 쉰셋이 돼 있었다.

"내일이 있었기에 버틸 수 있었습니다."

— 윤성여, 무죄 판결 뒤 인터뷰

2022년 11월, 법원은 국가가 윤성여에게 18억 7,000만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가 위자료를 40억 원으로 산정한 뒤, 앞서 지급이 결정된 형사보상금 25억여 원을 공제한 금액이었다. 국가가 20년의 값을 셈하는 방식이 그랬다.

경찰은 수사를 마무리하며 사건의 공식 이름을 '화성 연쇄살인'에서 '이춘재 연쇄살인 사건'으로 바꿨다. 이춘재는 화성 사건으로는 한 번도 재판받지 않은 채 무기수로 남아 있고, 윤성여는 출소 뒤 정착한 청주에 살고 있다. 33년 미제 사건이 마지막으로 바로잡은 것은 범인의 이름이 아니라, 범인이 아니었던 사람의 이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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