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치아는 내려가고 인천은 올라섰다
2019년 11월 12일 밤, 베네치아 산마르코 광장에 바닷물이 187cm 밀려들었다. 산마르코 광장은 베네치아에서 땅이 가장 낮은 곳이다. 도시가 잠길 때 가장 먼저 잠기고, 가장 늦게 마른다. 그날 밤 도시의 80%가 물속에 있었고, 산마르코 대성당 안으로도 물이 들어왔다.
베네치아 사람들은 밀려드는 바닷물을 아쿠아 알타(acqua alta), '높은 물'이라 부른다. 187cm는 반세기 만에 가장 높은 물이었다. 이보다 높았던 건 딱 한 번, 1966년 11월의 194cm뿐이다. 그사이 산마르코 광장이 물에 잠기는 날은 어느새 1년에 200번을 넘어섰다.
물 위에 세운 도시
베네치아는 처음부터 물 위의 도시였다. 5세기 무렵, 내륙 사람들이 밀려오는 이민족을 피해 석호 한가운데 진흙 섬으로 숨어들었다. 땅이라 부를 것도 없는 갯벌이었다.
사람들이 택한 방법은 갯벌에 나무 말뚝을 박는 것이었다. 수백만 개를 촘촘히 박고, 그 위에 널판을 깔고, 다시 돌을 얹었다. 지금 산마르코 대성당과 리알토 다리가 서 있는 자리도 이 말뚝 위다.
나무를 물에 담그면 썩는다. 그런데 진흙 깊이 박힌 말뚝은 썩지 않았다. 진흙 아래에는 산소가 닿지 않아, 나무를 썩히는 미생물이 살지 못한다. 산소가 없는 진흙 속에서 나무는 되레 돌처럼 단단하게 굳어갔다. 1500년 전에 박은 말뚝이 지금도 도시를 떠받치고 있다.
도시가 스스로 땅을 눌러 내렸다
물 위에 얹힌 도시가 흔들린 건 20세기 들어서였다. 베네치아 옆 육지에 마르게라 산업단지가 들어서면서, 공장들이 땅속 지하수를 퍼올리기 시작했다. 물이 빠져나간 갯벌은 스스로 눌려 내려앉았다.
1950년부터 1970년까지 스무 해 사이, 베네치아는 약 10cm 내려앉았다. 도시가 낮아진 만큼 바닷물은 더 쉽게 광장을 넘었다. 앞서 말한 1966년의 194cm 대홍수도 땅이 가장 많이 꺼진 이 시기의 끝에 왔다.
1960년대 말, 베네치아가 지하수 뽑기를 멈췄다. 땅 꺼짐은 느려졌다. 그런데 이번엔 바다가 반대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도시는 그 자리에 멈췄는데, 물이 차오르는 쪽으로 계산이 넘어갔다.
바다에 문을 달기로 했다
2003년, 베네치아가 석호로 들어오는 입구 세 곳을 막는 공사를 시작했다. 이름은 모세(MOSE). 바다를 가른 성경 속 인물의 이름이자, '실험용 전기기계 모듈'을 뜻하는 이탈리아어의 약자다.
방법은 78개의 강철 수문을 바다 밑바닥에 눕혀 두는 것이다. 평소엔 물속에 잠겨 보이지 않는다. 높은 물이 예보되면 수문 안으로 공기를 불어넣어 안에 찬 물을 밀어낸다. 텅 빈 수문이 떠오르며 바다와 도시 사이를 잠근다.
여기까지는 단순한 설계다. 복잡한 건 돈과 시간이었다. 처음 예상한 공사비는 13억 유로였다. 실제로 들어간 돈은 약 60억 유로, 다섯 배 가까이다. 2014년엔 모세 건설을 둘러싼 대형 부패 스캔들이 터져, 베네치아 시장이 자리에서 물러나기도 했다.
2020년 10월 3일, 78개 수문이 처음으로 함께 솟아 높은 물을 막았다. 산마르코 광장은 오랜만에 마른 채 겨울을 났다. 다만 설계가 가정한 바다는 여기까지다. 바다가 지금 속도로 계속 오르면, 모세가 도시를 온전히 지키는 건 길어야 몇십 년이라는 추정이 나온다.
지구 반대편은 반대로 답했다
베네치아가 수문을 눕히던 무렵, 지구 반대편 인천은 다른 답을 골랐다. 바다를 막는 대신, 바다를 밀어냈다.
1994년, 인천이 앞바다 갯벌을 흙으로 덮기 시작했다. 여의도의 17배, 53㎢의 새 땅이 만들어졌다. 밀물 때 잠기고 썰물 때 드러나던, 철새가 내려앉던 갯벌 위에 도시를 세웠다. 이름은 송도, 인천경제자유구역의 국제도시였다.
같은 갯벌을 두고 두 도시가 정반대로 갈렸다. 베네치아는 갯벌에 말뚝을 박아 물 위에 얹혔다. 송도는 갯벌을 흙으로 덮어 물을 밀어냈다. 한쪽은 물과 함께 살기로 했고, 한쪽은 물이 없던 자리를 만들었다.
송도를 두른 제방은 해발 7.6m다. 1997년 인천 앞바다가 기록한 가장 높은 물높이보다 2m 넘게 높다. 처음부터 바다보다 높게 쌓아 올린 도시다.
두 도시가 재는 숫자는 하나다
그런데 인천 앞바다도 오르고 있다. 송도신항의 2010년 이후 관측에서 바다는 1년에 약 6.8mm씩 높아졌다. 최근 몇 해는 8mm를 넘긴 때도 있다. 베네치아 앞바다의 상대 해수면 상승은 연 약 4.9mm로 잡힌다.
두 숫자를 나란히 놓기는 조심스럽다. 베네치아의 4.9mm는 땅 꺼짐까지 더한 오랜 기간의 상대 해수면이고, 송도의 6.8mm는 2010년 이후 십몇 년의 조위 관측이다. 재는 기간도, 재는 방법도 다르다. 정확히 포개어 비교할 숫자는 아니다. 그래도 방향은 한쪽으로 모인다. 두 바다 모두 오른다. 그리고 송도 쪽이 더디 오른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베네치아가 1500년에 걸쳐 마주한 바다를, 송도는 25년 만에 마주하고 있다. 한 도시는 물 위에 얹혀 1500년을 버텼고, 한 도시는 물을 밀어낸 채 25년째다. 가라앉는 쪽이든 쌓아 올린 쪽이든, 두 도시가 재는 숫자는 결국 하나다. 바다가 1년에 몇 밀리미터 오르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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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 베네치아 해수면 상승 (Wikipedia)
- 모세 방벽 MOSE (Wikipedia)
- 송도국제도시 (위키백과)
- 해수면 상승, 위기의 인천 섬 (경인일보)
- 2019 베네치아 대홍수 (Al Jazee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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