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퍼 옆자리 승무원은 오십 년을 침묵했다
1971년 11월 24일 저녁, 시애틀 활주로. 노스웨스트 오리엔트 305편의 계단으로 승객 서른여섯 명이 줄지어 내려갔다. 승무원 두 명도 따라 내렸다. 객실에 남은 사람은 스물두 살 승무원 티나 머클로 한 명, 그리고 검은 넥타이를 매고 붉은 원통과 전선이 든 서류가방을 무릎에 올려놓은 남자였다.
남자는 두 시간 뒤 현금 20만 달러를 몸에 묶고 비행기 뒷계단으로 뛰어내렸다. 미국은 오십 년이 넘도록 남자를 찾지 못했다. 세상이 오십 년 동안 물어온 질문은 하나였다. 그 남자는 누구였고 어디로 갔는가. 물어보지 않은 질문이 하나 더 있었다. 옆자리에 앉아 있던 승무원은 왜 오십 년 가까이 입을 열지 않았는가.
먼저, 이름부터 틀렸다
널리 쓰이는 'D.B. 쿠퍼'라는 이름은 납치범이 쓴 이름이 아니다. 포틀랜드 공항에서 현금으로 편도표를 사면서 남자가 적은 이름은 '댄 쿠퍼(Dan Cooper)'였다. 사건 직후 취재 과정에서 한 기자가 이름을 잘못 옮겼고, 그 착오가 통신사를 통해 퍼지면서 'D.B. 쿠퍼'가 굳었다. 오십 년 넘게 미국이 부르고 있는 이름은 처음부터 오자였다.
표를 살 때 신분증을 보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1971년 미국 국내선에는 승객 검색대가 없었다. 가방을 열어 보이는 절차도, 이름을 대조하는 절차도 없었다. 현금을 내면 표가 나왔고, 그대로 탔다. 미국이 국내선 승객 전원에게 금속탐지기와 소지품 검사를 통과하게 만든 것은 1973년 1월부터다. 쿠퍼가 뛰어내리고 열네 달 뒤였다.
기장이 막내를 객실로 내려보냈다
이륙 직후, 쿠퍼는 승무원 플로렌스 섀프너에게 쪽지를 건넸다. 섀프너는 읽지 않고 핸드백에 넣었다. 혼자 탄 남자들이 전화번호를 적어 건네는 일이 흔하던 시절이었다. 쿠퍼가 몸을 기울여, 쪽지를 읽어보는 편이 좋을 거라고 했다. 가방 안에 폭탄이 있다고 했다.
기장 윌리엄 스콧은 섀프너를 조종실에 붙잡아 두고 쿠퍼의 요구를 받아적게 했다. 대신 객실로 내려보낸 사람이 티나 머클로였다. 스물두 살, 승무원 중 가장 늦게 들어온 막내였다. 쿠퍼가 요구한 것은 20달러 지폐로 된 현금 20만 달러와 낙하산 네 개.
머클로는 쿠퍼가 열어 보인 가방 안을 봤다. 붉은 원통에 전선이 감겨 있었다. 속이 뒤집혔지만 토하는 대신 기도했다고 머클로는 오십 년 뒤에 말했다. 그리고 폭탄이 든 가방 옆, 쿠퍼의 옆자리에 앉았다. 맡은 일은 쿠퍼와 조종실 사이를 인터폰으로 잇는 것이었다.
비행기는 곧장 내리지 않았다. 지상에서 20달러 지폐 1만 장과 낙하산 네 개를 모으는 데 시간이 필요했고, 305편은 시애틀 상공을 두 시간 가까이 돌았다. 그동안 머클로는 쿠퍼에게 왜 하필 노스웨스트를 골랐느냐고 물었다. 대답은 항공사와 무관했다. 항공사에 원한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냥 원한이 있을 뿐이라고 했다. 무엇에 대한 원한인지는 끝내 말하지 않았다.
머클로는 내리지 않았다
요구가 채워지자 쿠퍼는 승객 서른여섯 명을 내려보냈다. 승무원 앨리스 핸콕이 승무원들도 내려도 되겠느냐고 묻자 쿠퍼는 좋을 대로 하라고 했다. 여기가 이 이야기의 갈림길이다. 남는 것은 명령이 아니라 선택이 됐다. 쪽지를 받았던 섀프너와 핸콕은 계단을 내려갔고, 머클로는 내리지 않았다.
조종실에는 기장 윌리엄 스콧과 부기장 윌리엄 라타잭, 기관사 해럴드 앤더슨이 있었다. 커튼 뒤 객실에서 납치범과 나란히 앉은 사람은 머클로 한 명이었다. 오십 년 뒤 머클로가 그 밤의 감각을 짧게 정리했을 때, 무엇보다 앞섰던 것은 혼자라는 느낌이었다.
저는 납치범이 폭탄을 터뜨리지 않도록, 안전하고 편안하다고 느끼게 하려고 옆자리에 앉아 있었습니다.
저녁 7시 40분, 비행기가 다시 떴다. 쿠퍼가 부른 목적지는 멕시코시티였고, 낮게 느리게 날라는 조건이 붙었다. 객실에 남은 사람은 쿠퍼와 머클로 둘뿐이었다.
이륙하자마자 쿠퍼는 뒷계단을 내리라고 시켰다. 머클로는 문이 열리면 빨려나갈까 봐 안전줄을 달라고 했고, 쿠퍼는 거절했다. 그리고 머클로에게 조종실로 들어가 커튼을 닫고 다시 나오지 말라고 했다. 커튼을 잡기 전, 머클로가 쿠퍼에게 마지막으로 한 말은 부탁이었다. 제발 폭탄은 가지고 내려가 달라고.
8시 13분, 기체가 위로 들렸다
저녁 8시 13분, 기체가 갑자기 위로 들렸다. 뒷계단에서 무게가 사라진 순간이었다. 커튼 뒤 네 사람은 쿠퍼가 뛰어내리는 장면을 보지 못했다. 비행기가 리노에 내렸을 때 객실은 비어 있었다.
좌석 18-E에는 검은 클립 넥타이가 놓여 있었다. 기내에는 낙하산 두 개가 남았고, 그중 하나는 쿠퍼가 돈자루를 묶느라 산줄을 잘라낸 예비 낙하산이었다. 재떨이에는 담배꽁초 여덟 개비. 담뱃불은 머클로가 옆자리에서 붙여줬다. 쿠퍼는 오른손을 기폭장치에서 떼지 않았다고 머클로는 회고했다. 꽁초 여덟 개비는 훗날 라스베이거스 FBI 사무소에 보관돼 있다가 폐기됐다. 유전자 감식이 가능해지기 전이었다.
돈은 일련번호가 전부 기록돼 있었다. 그런데 시중에서 한 장도 나오지 않았다. 1980년 2월, 컬럼비아 강가의 모래톱 테나 바에서 여덟 살 브라이언 잉그램이 모래를 파다 삭은 20달러 지폐 뭉치를 꺼냈다. 세어 보니 5,800달러였다. 오십 년이 넘도록 세상에 다시 나온 쿠퍼의 돈은 그 5,800달러가 전부다.
돈뭉치가 나온 자리는 답을 주는 대신 질문을 늘렸다. 테나 바는 수사관들이 잡아둔 낙하 예상 지점과 맞아떨어지지 않는다. 돈이 강물을 타고 그 모래톱까지 떠내려온 것인지, 누군가 묻은 것인지, 쿠퍼가 어디에 내렸다는 뜻인지를 두고 설이 갈린다. FBI는 2016년 7월 수사를 접었다. 쿠퍼가 착지에서 살아남았는지조차 확인된 바 없다.
미국은 뛰어내린 남자를 좋아했다. 워싱턴주 에어리얼의 술집은 해마다 쿠퍼의 이름을 걸고 잔치를 열었다. 노래가 나오고 영화가 나왔다. 항공사들은 비행 중에 뒷계단이 열리지 않도록 잠금장치를 달았고, 그 장치에는 쿠퍼의 이름이 붙었다.
오십 년의 침묵은 상처가 아니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옆자리에 앉았던 승무원을 찾아다녔다. 아마추어 수사가와 기자들이 수십 년 동안 티나 머클로를 쫓았다. 거절해도 문을 두드렸고, 집 앞 차 안에서 기다린 사람도 있었다. 머클로를 쫓아온 사람의 90~95퍼센트는 남자였다. 머클로는 인터뷰를 거절했다.
여기서 이야기가 흔히 굽는 방향이 있다. 쫓겨 다닌 여자, 트라우마로 입을 닫은 목격자. 머클로가 1978년 가톨릭 신앙을 택하고 1993년까지 수도원에 있었다는 사실은 그 해석에 꼭 맞아 보인다. 그러나 머클로 본인이 밝힌 이유는 다르다. 자기 영성과 더 깊은 기도 생활을 탐구하고 싶었다고 했다. 수도원을 나온 뒤에는 오리건 유진에서 노숙인과 정신과 환자 곁에서 삼십 년 가까이 일했다. 숨어 산 사람의 이력이 아니다.
머클로가 입을 다문 이유는 두려움이 아니었다. 오십 년 만에 밝힌 이유는 훨씬 단순했다. 머클로는 자기 삶을 살았고, 하고 싶은 일을 했다. 다섯 시간이 나머지 인생의 제목이 되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침묵은 상처가 아니라 선택이었다.
저는 제 삶을 살았습니다. 납치 사건이 저를 규정하지는 않았습니다.
2021년, 오리건 유진
사건에서 오십 년이 되어가던 무렵, 티나 머클로가 처음으로 길게 말했다. 롤링스톤 기자 앞에서였다. 이유는 하나였다. 납치 사건이 자기 것이 아니라고 느꼈고, 역사에 돌려줄 때가 됐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쿠퍼가 누구였는지는 끝내 밝혀지지 않았다. 오십 년이 지나 비행기에서 나온 물증 가운데 지금도 분석대에 오르는 것은 좌석 18-E의 검은 클립 넥타이 하나다. 노스웨스트 오리엔트 305편 객실에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사람은 스물두 살 티나 머클로였다. 머클로는 오십 년 동안 그 다섯 시간을 누구에게도 넘기지 않았고, 오십 년이 지나서야 역사에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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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 Rolling Stone — The Untold Story of D.B. Cooper's Flight Attendant (Tina Mucklow, 2021)
- Wikipedia — D. B. Cooper
- FBI — D.B. Cooper Hijacking (Famous Cases)
- HistoryLink — Dan Cooper parachutes from skyjacked jetliner on November 24, 1971
- HistoryLink — $5,800 of ransom money is found near the Columbia River on February 10, 1980
- The Rumpus — Into Thin Air: The Women on Flight 305 (2021)
- SimpleFlying — A Brave Young Flight Attendant's Role In The D.B. Cooper Mystery
- Boing Boing — Does this former flight attendant hold the secret to mystery skyjacker DB Cooper's identity? (2021)
- History.com — Airport Security Timeline (1973-01-05 보편 검색 시행)
- Atlas Obscura — D.B. Cooper Day at the Ariel General Store & Tavern
- HistoryNet — The Legend of D.B. Cooper (머클로가 쿠퍼와 보낸 다섯 시간의 직접 근거)
- Portland Mercury — FBI 파일 공개 보도 (담배꽁초 8개비의 보관·폐기 경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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