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인들이 있었다, 8천 명이 죽었다
1995년 7월 11일 오후, 네덜란드 대대장 톰 카레만스는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가 서 있던 곳은 보스니아 동부의 작은 마을 스레브레니차. 유엔이 지키라며 그를 보낸 자리였다. 손에 쥔 것은 400명 남짓한 병사와, 대전차 무기 단 두 정. 마을 밖에는 세르비아계 군대의 탱크가 늘어서 있었다.
유엔은 이 마을을 '안전지대'라고 불렀다. 카레만스가 올려다본 하늘에서, 그 말을 지켜줄 무언가가 오기로 되어 있었다.
'안전지대'라는 말이 먼저 도착했다
보스니아 전쟁이 한창이던 1993년 4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결의 819호로 스레브레니차를 '안전지대'로 선포했다. 문제는 순서였다. 세르비아계 군대가 마을을 이미 포위한 뒤에 나온 선언이었다.
그 무렵 보스니아에서는 인종 청소가 벌어지고 있었다. 무슬림 주민이 마을에서 쫓겨나거나 목숨을 잃었고, 스레브레니차에는 인근에서 피란 온 사람들이 몰려 인구가 몇 배로 불어 있었다. 유엔은 이런 마을 몇 곳을 골라 '여기는 건드리지 말라'고 선을 그었다. 선을 그은 것은 종이 위에서였다.
'안전지대'는 힘이 세 보이는 말이었다. 유엔의 이름이 붙어 있었으니까. 그런데 마을을 에워싼 군대는 그 종이를 읽지 않았다.
400명이 지켜야 했던 것
1994년 3월, 네덜란드 대대가 방어 임무를 넘겨받았다. 처음 온 병력은 600명, 무장은 가벼웠다. 시간이 지나며 숫자는 오히려 줄었다. 휴가를 나간 병사들이 돌아오지 못했기 때문이다. 마을을 포위한 세르비아계 군대가 보급로를 끊고 병력 교대를 막았다. 1995년 여름, 스레브레니차에 남은 네덜란드 병력은 400명 남짓이었다.
연료도 식량도 탄약도 밖에서 들어오지 못했다. 지켜야 할 사람은 수만 명, 지키는 군인은 400명, 대전차 무기는 두 정. 병사들은 자신들이 든 총 뒤에 나토 전투기가 있다고 믿었다. 유엔이 약속한 '안전'의 실체가 바로 그 전투기였다.
전투기가 왔다가 돌아간 이유
1995년 7월 6일, 세르비아계 군대가 안전지대를 향해 진격을 시작했다. 마을 둘레의 관측소가 하나씩 넘어갔다. 7월 8일에는 네덜란드 병사 라비브 반 렌센이 목숨을 잃었다. 세르비아계와 싸우다가 아니라, 관측소에서 물러나던 혼란 속에서였다. 대대가 잃은 유일한 병사였다.
카레만스는 400명으로 세르비아계 군대를 막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하늘을 택했다. 나토 전투기의 공습을 거듭 요청했다. 7월 11일 오후, 네덜란드 F-16 두 대가 마침내 상공에 나타나 세르비아계 탱크 두 대를 때렸다.
그리고 공습은 곧 멈췄다. 세르비아계 군대가 네덜란드 병사 50명 가까이를 인질로 붙잡고, 병사들을 처형하고 피란민이 몰린 곳을 포격하겠다고 통보했기 때문이다. 수만 명을 지키기로 한 약속이, 50명 앞에서 멈췄다.
너무 늦게 왔고, 그마저도 너무 적었다.
— 톰 카레만스, 훗날 국제법정 증언
버스가 떠난 뒤
7월 11일, 마을은 함락됐다. 세르비아계 사령관 라트코 믈라디치가 스레브레니차로 걸어 들어왔다. 믈라디치는 카레만스를 불러 술잔을 건넸고, 두 사람이 잔을 부딪치는 장면이 네덜란드 텔레비전으로 방영됐다. 훗날 '수치의 건배'라 불린 장면이다.
유엔 기지가 있던 포토차리 앞으로 2만 명이 넘는 사람이 몰려들었다. 세르비아계 군대는 여자와 아이를 버스에 태웠다. 남자들은 '나중에 보내겠다'며 따로 세웠다. 버스는 떠났다. 따로 세워진 남자와 소년 8천 명이 넘게 돌아오지 않았다. 국제 법정은 훗날 스레브레니차에서 벌어진 일을 제노사이드로 판단했다.
대가는 오래 남았다. 2002년 4월, 스레브레니차를 조사한 보고서가 나온 지 일주일도 안 돼 네덜란드 정부가 총사퇴했다. 2019년 7월에는 네덜란드 대법원이 국가의 책임을 인정했다 — 다만 기지에서 돌려보낸 남자 약 350명에 대해, 10퍼센트의 책임이었다.
'안전지대'는 유엔이 만든 말이었다. 스레브레니차에서 그 말은 총을 뜻하지 않았다. 8천 명은 안전하다고 적힌 종이 위에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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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 Wikipedia — Dutchbat (1994년 3월 600명 배치·휴가 병력 복귀 차단으로 1995년 400명 감축)
- Wikipedia — Thom Karremans
- Wikipedia — Srebrenica massacre (함락·공습·인질·건배·난민·희생자 교차검증)
- Wikipedia — UN Security Council Resolution 819 (1993년 4월 안전지대 선포)
- Wikipedia — Operation Krivaja '95 (세르비아계 공세 1995년 7월 6일 개시)
- Oorlogsgravenstichting — Raviv van Renssen (1995-07-08 사망·Dutchbat 유일 전사자)
- HRW — The Fall of Srebrenica and the Failure of UN Peacekeeping (1995): 인질 억류 병력 48~50명, 공습 중단 근거
- Sciences Po — The Srebrenica Massacre (July 11-16, 1995): 네덜란드 F-16 2기가 세르비아계 탱크 두 대 폭격
- IWPR — Karremans Recalls Srebrenica Fall: 공습 'too little, too late' 증언(ICTY)
- projectauthenticity.org — The infamous Mladić–Karremans toast ('toast of shame' 라벨·네덜란드 TV 방영)
- NPR — Dutch Troops Were 10% Liable In Srebrenica Massacre, Supreme Court Says (2019)
- Balkan Insight — Netherlands '10% Responsible' for Srebrenica Deaths (2019, 350명·10%)
- RFE/RL — Government Resigns Over Damning Srebrenica Report (2002, NIOD 보고서 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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