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판 한 장으로 덮었다

1994년 10월 21일, 아침 7시 38분. 서울 성수대교 위로는 출근하는 차와 등교하는 학생들이 뒤섞여 있었다. 무학여고 학생들을 태운 16번 시내버스도 그 위에 있었다. 다리 한가운데, 제10번과 11번 교각 사이의 상판 48미터가 한순간에 끊어져 20미터 아래 한강으로 떨어졌다. 차 여섯 대가 함께 빠졌다. 이 사고로 32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은 지 15년밖에 안 된 다리였다. 사람들은 처음에 다리가 낡아서 무너졌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15년 된 다리는 낡은 다리가 아니다. 멀쩡해 보이던 다리가 출근길 한복판에서 끊어진 이유는, 세월보다 훨씬 사람의 손에 가까운 곳에 있었다.

날렵하게 짓고 싶었던 다리

성수대교는 1977년에 착공해 1979년 10월 동아건설이 완공했다. 한강에 놓인 다리 가운데 처음으로 거버 트러스라는 공법을 썼다. 다리를 더 날씬하고 보기 좋게 만드는 방식이었다. 튼튼함보다 미관을 앞세운 선택이었다.

거버 트러스는 부재 하나하나가 서로를 받치는 구조다. 계산이 간단하고 모양이 우아한 대신, 약점이 하나 있었다. 핵심 부재 하나가 끊어지면 그 무게를 나눠 받을 곳이 없어 전체가 함께 내려앉는다. 우아함과 위태로움이 같은 설계 안에 들어 있었다. 다리는 멀쩡하거나, 아니면 통째로 떨어지거나 둘 중 하나였다.

다리가 놓일 때 강남은 아직 논밭에 가까웠다. 설계는 하루 차량 8만 대를 견디도록 잡혔고, 1979년의 교통량에는 넉넉한 숫자였다. 그때까지는 그랬다.

두 배가 된 무게

1993년, 동부간선도로 성수~상계 구간이 뚫렸다. 강남이 커지면서 다리를 건너는 차가 빠르게 늘었다. 설계 기준이 하루 8만 대였는데, 1994년에는 하루 16만 대가 다리를 밟고 지나갔다. 견디기로 한 무게의 두 배가 매일 다리를 짓눌렀다.

여기서 앞 장의 부실한 용접이 문제가 된다. 한 번에 끊어질 정도는 아니어도, 약하게 박힌 용접 자리에 매일 두 배의 무게가 실리면 금속에는 눈에 안 보이는 미세한 균열이 자란다. 강재는 천천히, 그러나 쉬지 않고 지쳐 갔다. 다리는 무너지기 한참 전부터 이미 무너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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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날, 틈을 본 사람들

붕괴 전날인 1994년 10월 20일, 다리 점검에서 이음매 한 곳이 크게 벌어진 것이 발견됐다. 강판과 강판이 만나야 할 자리에 틈이 생겨 있었다. 지쳐 가던 다리가 마지막으로 보낸 신호였다.

선택지는 두 가지였다. 다리를 막고 벌어진 자리를 제대로 보수하거나, 손대지 않고 두거나. 하루 16만 대가 건너는 다리를 막는 일은 누구도 쉽게 결정하지 못했다. 작업자들은 벌어진 틈 위에 1.3 × 2미터짜리 철판 한 장을 덧대 덮었다. 다리는 다음 날 아침에도 평소처럼 차를 받았다.

붕괴 한 시간 반 전, 한 운전자가 다리를 지나다 차가 쿵 내려앉는 느낌을 받았다고 신고했다. 아침 6시 무렵이었다. 아무 조치도 내려지지 않았다. 한 시간 반 뒤, 그 자리가 끊어졌다.

다리를 뜯어보니

붕괴 뒤 조사관들이 남은 연결부를 방사선으로 찍었다. 다리를 지탱하던 용접 자리를 한 곳씩 들여다봤다. 결과는 한쪽으로 쏠려 있었다.

연결부 111곳 가운데 110곳에서 결함이 나왔다. 18밀리미터 두께 강재에 용접은 고작 2~8밀리미터만 박혀 있었다.

다리가 처음 세워질 때부터 속이 비어 있었다는 뜻이다. 게다가 15년 동안 정밀 점검을 한 번도 받지 않았다. 당시 정밀 점검 대상은 지은 지 20년이 넘은 구조물뿐이었고, 성수대교는 아직 15년째였다. 가장 위험했던 다리가 점검 대상에서 빠져 있었던 셈이다.

그러니 다리를 무너뜨린 건 세월이 아니었다. 부실하게 박힌 용접, 두 배로 늘어난 무게, 그리고 전날 벌어진 틈을 보수 대신 철판 한 장으로 덮고 지나간 하루가 겹친 결과였다. 누구도 다리를 무너뜨리려 한 사람은 없었다. 다만 멈춰야 할 자리에서 아무도 멈추지 않았을 뿐이다.

일곱 배가 든 다리

사고 뒤 책임을 가린 재판에서 서울시 공무원과 시공·하청업체 관계자 16명이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됐다. 형은 6개월에서 3년 사이였고, 이원종 서울시장은 사고 당일 자리에서 물러났다.

성수대교는 1997년 7월에 새로 놓였다. 처음 지을 때 115억여 원이 들었던 다리를 다시 짓는 데는 일곱 배에 가까운 돈이 들었다. 가장 빠르고 우아하게 지으려던 다리가, 가장 비싸고 느린 방법으로 되돌아왔다. 그리고 이듬해 여름, 이번에는 삼풍백화점이 무너졌다. 빨리 올린 것들이 차례로 주저앉던, 한강의 기적이라 불리던 빠른 성장의 뒷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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