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라앉는 배 위에서 악단은 연주했다
월리스 하틀리는 바이올린을 턱에 괴고 있었다. 발밑 갑판은 이미 뱃머리 쪽으로 기울고, 사람들은 구명보트 줄로 몰려갔다. 1912년 4월 15일 새벽, 북대서양 한가운데였다. 하틀리 옆에서 일곱 사람이 함께 악기를 들고 있었다. 여덟 명은 그 새벽을 넘기지 못했다.
타이타닉에서 끝까지 연주한 악단 이야기는 워낙 알려져 있다. 침착한 신사들이 음악으로 가라앉는 배 위 사람들을 달랬다는 그림. 그런데 이 여덟 명이 누구였는지를 따라가 보면, 익숙한 그림 뒤에 덜 알려진 사정이 몇 겹 깔려 있다.
처녀항해, 두 팀이 한 배에 올랐다
월리스 하틀리는 1878년 잉글랜드 북부 콜른에서 태어났다. 감리교 집안에서 자란 바이올리니스트로, 한 배에 오래 머무는 사람이 아니었다. 배에서 배로 옮겨 다니며 악단을 이끌었고, 타이타닉은 그가 일하게 된 여러 큰 배 가운데 하나가 될 예정이었다.
타이타닉은 그때까지 만들어진 가장 큰 여객선이었고, 1912년 4월 10일 사우샘프턴에서 첫 항해를 시작했다. 배에 오른 음악대는 모두 여덟 명이었다. 원래는 따로 움직이던 두 팀이었다 — 식당과 라운지에서 연주하던 다섯 명, 별도의 식당에서 연주하던 세 명. 두 팀은 평소 같이 연주하지 않았다. 한 배에 함께 오르면서 비로소 여덟 명이 한 악단이 되었다.
빙산이 스친 뒤, 악단은 갑판으로 옮겼다
1912년 4월 14일 밤 11시 40분, 타이타닉이 빙산을 긁고 지나갔다. 충돌 30분쯤 뒤, 악단은 1등실 라운지로 불려 갔다. 동요하는 승객을 달래라는 뜻이었다. 구명보트가 한 척씩 내려지는 동안, 악단은 라운지에서 갑판 입구 쪽으로 자리를 옮겨 연주를 이어 갔다.
그 사이 갑판 위 사정은 빠르게 나빠지고 있었다. 타이타닉에 실린 구명보트는 스무 척, 정원을 다 채워도 배에 탄 사람의 절반쯤만 태울 수 있었다. 악사들은 보트 줄에 서는 대신 갑판에 남아 악기를 들고 있었다.
이들은 선원이 아니었다
흔히 악단을 '끝까지 자리를 지킨 선원'으로 떠올리지만, 여덟 명은 White Star의 선원이 아니었다. 리버풀의 음악 대행사 C.W. & F.N. 블랙이 배에 올린 사람들이었다. 승선 명부에는 선원이 아니라 2등 승객으로 이름이 올라 있었고, 대행사와 묶인 명목상의 급료는 한 달에 1실링 남짓이었다. 법적으로 이들은 선원보다 승객에 가까웠다. 배와 함께 가라앉을 의무 같은 건 처음부터 없었다.
의무가 없었다는 사실은 배가 가라앉은 뒤에 한 번 더 드러났다. 침몰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대행사는 한 악사의 유족에게 청구서를 보냈다. 죽은 연주자가 입었던 제복의 라이어(악기 모양) 휘장값과, 단추를 꿰맨 삯이 적혀 있었다. 액수는 5실링 4펜스. 아들을 잃은 집에 도착한 건 위로가 아니라 정산서였다.
마지막 곡이 무엇이었는지는, 지금도 설이 갈린다
악단이 마지막에 '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을 연주했다는 이야기는 널리 퍼져 있다. 하틀리 자신이 남긴 말도 여기에 힘을 보탠다. 동료 악사 엘완 무디의 회고에 따르면, 하틀리는 언젠가 가라앉는 배에 타게 된다면 어떤 곡이 좋겠냐는 물음에 이렇게 답한 적이 있었다.
가라앉는 배에 타게 된다면, '예부터 도움 되시고'나 '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을 연주하는 것보다 나은 건 없을 것 같소.
다만 마지막 곡이 정말 그 찬송가였는지는 증언마다 엇갈린다. 살아남은 무선사 해럴드 브라이드는 배가 기우는 동안 '가을(Autumn)'이라는 곡이 들렸다고 했는데, 이것이 찬송가가 아니라 당시 유행하던 같은 이름의 왈츠를 가리킨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조차 영국과 미국에서 서로 다른 선율로 불렸으니, 들었다 해도 어느 가락이었는지가 또 갈린다. 무엇을 마지막으로 켰는지는, 100년이 지난 지금도 깔끔하게 정해지지 않았다.
콜른에 삼사만 명이 모였다
하틀리의 시신은 북대서양에서 수습되어 고향 콜른으로 돌아왔다. 1912년 5월 18일 장례식에는 천여 명이 모였고, 운구 행렬을 따라 삼사만 명이 거리에 늘어섰다고 전해진다. 무덤 앞에서 합창단이 부른 곡은 '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이었다.
하틀리가 타이타닉에서 들고 있던 바이올린은 약혼녀 마리아 로빈슨이 준 선물이었다. 꼬리판에 붙은 은판에는 '월리스에게, 우리 약혼을 기념하여 — 마리아가'라는 글이 새겨져 있었다. 이 바이올린은 2013년 경매에서 90만 파운드에 팔렸다. 타이타닉에서 나온 유물 가운데 가장 비싼 값이었다.
선원 명부에 없던 여덟 명은, 배에 묶일 이유가 없었는데도 갑판을 떠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무슨 곡을 켰는지는 아직도 정해지지 않았지만, 끝까지 악기를 내려놓지 않았다는 것만은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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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 Musicians of the Titanic — Wikipedia
- Wallace Hartley — Wikipedia
- Families of Titanic's musicians were billed the cost of uniforms — The Vintage News
- Auction record: 'Titanic violin' fetches £900,000 — The Strad
- Funeral of the Titanic's Bandmaster — Encyclopedia Titanica
- Sinking of the Titanic — Wikipedia
- Did the band play 'Nearer My God To Thee'? — Tim Maltin (엘완 무디 회고 원문·마지막 곡 논쟁)
- Musicians of the Titanic: the ship's musical heroes — Classical Music (BBC)
- Titanic's Band — Titanic-Titanic.com (라운지→갑판 이동)
- The Titanic Band — GG Archives (2등 승객 명부·crew 미포함)
- Lifeboats of the Titanic — Wikipedia (20척·정원 1,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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