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록수》를 쓴 심훈, 책 나오고 열아흐레 만에 죽었다

1936년 8월, 경성. 한 남자가 출판사 건물 안에서 먹고 잤다. 집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자기가 쓴 소설을 책으로 묶는 마지막 작업을 직접 붙어서 보려고, 한성도서라는 출판사에 들어가 그 안에서 끼니를 때우고 잠을 잤다. 책이 나오기까지 그는 거기서 버텼다. 그리고 책이 나오자, 그는 곧 사라졌다.

책의 제목은 상록수였다. 사철 잎이 지지 않는 나무라는 뜻이다. 남자의 이름은 심훈이었다.

오백 원이 걸린 소설

1935년 식민지 조선의 농촌은 가난했다. 글을 읽지 못하는 사람이 대다수였고, 도시에서 공부한 청년들이 시골로 내려가 야학을 여는 일이 곳곳에서 있었다. 그해 동아일보가 창간 15주년을 맞아 농촌을 다룬 장편소설을 현상공모했다. 내건 상금이 500원이었다. 보통 사람의 한 해 살림이 쉽게 넘보기 어려운 액수였고,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현상금이었다(디지털당진문화대전).

여기에 당선된 사람이 심훈이었다. 본명은 심대섭. 1901년 서울 흑석동에서 태어나 영화도 찍고 시도 쓰던 사람이었다(심훈, 위키백과). 그는 1934년, 충남 당진에 필경사라는 작은 집을 손수 지어 내려가 있었다. 펜으로 밭을 간다는 뜻의 이름이었다.

심훈이 농촌 소설을 쓰겠다고 마음먹은 데에는 가까이서 본 두 사람이 있었다. 당진에서는 장조카 심재영이 야학을 열고 공동경작회를 꾸리고 있었다. 그리고 경기 안산 샘골에서는 최용신이라는 젊은 선생이 농촌 아이들을 가르치다 1935년 1월, 스물다섯 살에 세상을 떠났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심훈은 이 두 사람의 자리를 소설 안에 옮겨 두고 싶어 했다.

오십사 일, 그리고 막힌 길

심훈은 필경사에서 상록수를 써 내려갔다. 1935년 5월 4일부터 6월 26일까지, 54일이었다(디지털당진문화대전). 소설은 동아일보 현상공모에 당선됐고, 그해 9월부터 신문 지면에 연재되기 시작했다.

연재가 끝나자 심훈은 이 이야기를 더 멀리 보내려 했다. 그가 고른 방법은 영화였다. 글을 읽지 못하는 사람도 볼 수 있는 매체였기 때문이다. 본래 영화판에서 일했던 그는 직접 각색과 감독을 맡고 제작사까지 정해 두었다. 그러나 일제 당국은 상록수의 영화화를 허가하지 않았다(용인일보).

영화 길이 막히자, 심훈에게 이야기를 남길 길은 책 한 권뿐이었다. 그래서 그는 단행본을 찍는 한성도서로 들어가, 출판사 건물에 머물며 먹고 자고 간행 작업에 매달렸다. 처음 이야기로 돌아가는 장면이 여기다. 집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 책을 끝까지 지켜보려는 사람의 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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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아흐레

출판사에서 책에 매달리던 심훈은 장티푸스에 걸렸다. 1936년 8월 28일, 상록수 단행본이 한성도서에서 나왔다. 책은 끝내 세상에 나왔다.

그리고 책이 서점에 깔리고 열아흐레 뒤인 1936년 9월 16일 오전, 심훈은 경성제국대학 부속병원에서 숨을 거뒀다(심훈, 위키백과). 1901년에 태어났으니 서른다섯 해를 다 채우지 못한 죽음이었다. 사철 잎이 지지 않는 나무를 제목으로 쓴 사람이, 책이 나오고 채 스무 날을 넘기지 못했다.

발간 1936년 8월 28일 → 사망 1936년 9월 16일. 그 사이는 열아흐레였다.

소설의 주인공 채영신은 안산 샘골에서 죽은 최용신을 모델로 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작품 속 인물과 실존 인물을 곧장 같은 사람으로 못 박기는 어렵지만, 채영신이 농촌 계몽에 몸을 던지다 쓰러지는 자리와 샘골 선생의 짧은 생애가 겹쳐 읽혀 온 것은 분명하다. 소설에 그려진 젊은 선생도, 그 소설을 쓴 작가도 오래 살지 못했다.

남은 나무

심훈이 손수 지은 당진 필경사는 지금도 남아 있다. 상록수는 아흔 해 동안 교과서와 서점에 실려 읽혀 왔다. 정작 사철 푸른 나무로 남은 것은 안 시드는 나무라는 제목을 쓴 사람이 아니라, 그가 종이에 옮겨 둔 이야기 쪽이었다. 책을 끝까지 지켜본 사람은 열아흐레 만에 갔고, 책은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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