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 200대가 군인 쪽으로 갔다
1980년 5월 20일 저녁 6시, 광주 무등경기장 앞. 한 택시 기사가 핸들을 쥐고 전조등 스위치를 올렸다. 옆 차도, 그 옆 차도 따라 불을 켰다. 잠시 뒤 200대 가까운 택시가 일제히 전조등을 켜고 경적을 울리며 도청 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맨 앞줄엔 대형 트럭과 버스가 섰고, 뒤로 택시가 길게 줄을 이었다.
택시는 기사들이 하루를 버는 밥줄이었다. 그 밥줄을 몰고 곤봉과 최루탄이 선 쪽으로 향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공수부대가 내려온 도시
1979년 10월 박정희 대통령이 세상을 떠난 뒤, 권력은 신군부의 손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1980년 5월 17일 자정, 비상계엄이 전국으로 확대됐다. 이튿날 광주에 공수부대가 내려왔다. 군인들은 거리에서 학생과 시민을 곤봉과 대검으로 다뤘다. 외부로 통하는 전화가 끊기고 도로가 막히면서, 광주는 바깥과 떨어진 섬처럼 고립돼 있었다.
택시 기사들이 가장 먼저 한 일은 싸움이 아니라 운반이었다. 피를 흘리는 사람을 태우고 병원으로 달렸다. 그런데 계엄군은 부상자를 실은 택시를 세웠다. 환자와 운전사를 함께 끌어내려 다시 때리고 데려갔다. 도망치는 학생을 태운 택시는 대검에 찔렸다. 2017년 경향신문에 증언을 남긴 기사 이행기는 그때를 이렇게 기억했다.
그건 폭력이 아니라 살인이었어요.
혼자서는 안 됐다
택시 한 대가 부상자를 실으면 군인들이 곧바로 차를 세워 기사를 끌어냈다. 한 대로는 사람 하나를 지키지 못했다. 남은 방법은 한꺼번에 움직이는 것뿐이었다.
기사들은 입에서 입으로 시각과 장소를 정했다. 5월 20일 저녁 6시, 무등경기장 앞. 택시는 기사 대부분이 가진 거의 전부였다. 그 전부를 최루탄 앞에 세우기로 마음을 정하면서, 기사들은 같은 말을 입에 올렸다.
이대로 죽을 수 없다.
200개의 전조등
약속한 시각, 200대 가까운 차가 한꺼번에 전조등을 켜고 경적을 울리며 시내로 들어왔다. 맨 앞엔 태극기가 걸렸다. 대형 트럭과 버스가 길을 트고, 택시가 뒤를 따랐다. 시내 곳곳의 계엄군 바리케이드가 차량 행렬에 밀려 무너졌고, 흩어졌던 시민들이 골목에서 쏟아져 나와 박수를 쳤다. 기사 장훈명은 그 환호를 평생 잊지 못했다.
평생 그런 환호를 받아본 적이 없어요. 우리 일생에.
행렬이 금남로 저지선에 닿자, 방독면을 쓴 공수부대가 엄청난 양의 최루탄을 쏟아부었다. 차 유리를 부수고 운전사를 끌어내려 집단으로 때렸다. 그래도 200대가 한 줄로 서자 군인들은 도시 전체를 막을 수 없었다. 택시·버스·트럭 기사들이 함께 도청을 향한 이 차량 시위는, 5·18 항쟁이 절정으로 치닫는 분기점이었다. 같은 날 자정, 광주역 앞에서 계엄군의 첫 집단 발포가 있었다.
기억에서 빠져 있던 이름
5·18 하면 보통 학생과 시민군을 먼저 떠올린다. 그런데 5월 20일 저녁 도청 앞으로 가장 먼저 밀고 들어간 건, 밥줄을 몰고 나온 운전기사들이었다. 택시만도 아니었다. 행렬의 맨 앞을 튼 건 대형 트럭과 버스였고, 화물차·버스 기사들이 택시 기사들과 나란히 차를 몰았다.
'200여 대'라는 숫자는 정확한 집계라기보다 그날 거리를 메운 차량의 어림수다. 기록마다 200대 안팎으로 적힌다. 분명한 건 한 사람의 결심이 아니라 직업 하나가 통째로 거리로 나왔다는 사실이다. 광주는 1986년부터 5월 20일을 '민주기사의 날'로 정해 기념한다. 해마다 운전기사들이 무등경기장에서 금남로까지 그날의 행렬을 다시 잇는다.
그날 광주의 기사들이 켠 건 전조등 200개였다. 무기도, 구호도 아니었다. 5월 20일 밤 광주가 그 불빛에서 확인한 건, 광주가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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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 경향신문(2017) — 1980년 5월, 나는 광주의 택시운전사였습니다 (1인칭 증언: 차량시위 동기·부상자 이송 중 계엄군 구타·도망 학생 태운 택시 대검 사건·무등경기장 저녁 6시 집결·태극기/전조등/경적·시내 바리케이드 붕괴·시민 환호·금남로 최루탄과 집단구타. 인용 '그건 폭력이 아니라 살인이었어요'(이행기), '평생 그런 환호를 받아본 적이 없어요. 우리 일생에'(장훈명), '이대로 죽을 수 없다'(기사들 입 모음))
- 위키백과 — 5·18 광주 민주화 운동 (5월 20일 택시·시내외 버스 200여 대가 계엄군 진입로를 가로막음. 20일 24시 계엄군 광주역 앞 최초 집단 발포, 21일 전남도청 앞 무차별 발포 등 날짜 흐름)
- 뉴시스(2020) — 1980년 5월 광주 금남로 메운 차량 시위 재현 (저녁 6시 택시·버스 약 200대 금남로 차량시위, 전조등·비상등 켜고 재현, 무등경기장→금남로 민주기사의 날 재현 행사)
- 우리역사넷 — 5·18 광주 민주화운동 (5월 20일 택시기사들이 버스·트럭 기사와 함께 도청 향해 가두시위, 시위가 절정에 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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